서 시
(1941.11.20 완성)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감상 :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철저하게 양심앞에 정직하고자 했던 지은이의 내부적 번민과 의지가 보인다. 끊임없는 자아에 대한 부끄러움의 인식이 바탕을 이루어, 일제 하에 사는 한 지성인의 고뇌와 섬세하고 예민한 정감을 표출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소명의식이 핵심을 이룬다. 이 시는 일제 암흑기의 그의 시정신을 대변하는 대표 작품이다.
( 별 : 순수 소망 양심의 세계, 이상적 삶)
* 어조 : 엄숙, 정결한 분위기의 어조
* 시상의 전개 방법 : 시간의 이동
과거(1~4행) → 미래(5~8행) → 현재(9행, 제2연)
* 구성
제1~2행 : 부끄럼 없는 삶에 대한 희구
제3~4행 : 현실 상황 속에서의 고뇌
제5~8행 : 사랑의 실천과 진실한 삶의 다짐
제9행 : 시련과 고뇌의 현실 확인
* 주제 : 부끄러움 없는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
윤동주는 조부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독교를 믿어온 모태신앙의 소유자다. 그러나 윤동주는 연희전문 시절 극심한 종교적 회의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종교적 회의에 시달리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순결한 양심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기독교는 내세주의, 또는 초월주의적인 종교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내세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 근본 교리이다. 기독교의 이러한 교리는 자칫하면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고 내세의 구원만을 추구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순결한 정신의 소유자로서 윤동주는 기독교의 그러한 초월주의를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시 <팔복>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패로디하여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를 여덟번이나 반복한 뒤 그들에게는 영원한 슬픔만이 있을 뿐이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려 성경의 내용을 뒤집고 있다. 지상적인 슬픔을 참고 인내하는 것만으로 영생이 보장되고 천국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신이 인간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에 창조한 이유를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는 <태초의 아침>에서도 보이는데 윤동주는 기독교의 초월주의적 성격에 대한 회의를 통해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진 이유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악과 대결하여 지상 세계를 낙원으로 만들라는 신의 예정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젊은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얼마되지 않는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서시>는 윤동주 시집 전체를 대표하는 시로 초월적인 신앙을 극복하고 운명에 대한 긍정과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을 보여주는 시이다. 첫연에는 삶의 도덕적 순결성을 지향하는 윤동주의 삶의 지표와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구절은 그의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과 도덕적 순결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은 현실 속에서의 삶 자체를 괴로운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란 나무 잎새를 흔들 정도의 아주 작은 바람은 의미한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잎새가 흔들리 듯 시인은 현실의 작은 풍파에도 괴로워 할 정도로 나약했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들은 초월적인 신앙에 대한 반성을 통해 운명에 대한 인식과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윤동주의 의식 변화를 보여준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것은 초월적인 천상적 세계를 노래하던 마음으로 이제는 죽어가는 모든 것, 즉 운명을 타고난 지상적인 모든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말이며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구절은 동시에 그것을 하늘이 부여한 운명으로 알고 실천해 나가겠다는 소명의식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과거시제에서 현재시제로 이동하면서 과거의 초월적인 신앙을 반성하고 현실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금까지 초월적인 차원에서 추구되던 별은 윤리의식의 거울이 되며 하늘을 노래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지상적인 삶과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역사적 소명감으로 발전하고 있다. 천상적인 세계 속에만 존재하던 별과 하늘은 지상적인 별과 하늘이 될 수 있으며 그는 하늘의 세계를 지상에 이룩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윤동주에 대하여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북간도(北間島)
주요저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주요작품
《서시(序詩)》,《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
| 본문 |
|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이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大拉子) 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정에 있는 은진(恩眞)중학교에 입학하였다(1933).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교[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 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인 연길 용정(龍井)에 묻혔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윤동주는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처녀작은 <삶과 죽음> <초한대>이다. 발표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 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쓰여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여진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대표작으로 그의 인간됨과 사상을 반영하는 해맑은 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특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대표시로서, 어두운 시대에 깊은 우수 속에서도 티없이 순수한 인생을 살아가려는 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1968). |
| <류재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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